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치바 롯데 마린즈 (문단 편집) == 역대 감독 == [include(틀: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 * [[유아사 요시오]] (1950~1952) 팀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이자 최초의 [[일본시리즈]] 우승팀의 영광'''을 안겨준 감독, 그러나 1952년 "헤이와다이 사건"[* 1952년 7월 16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헤이와다이 구장에서의 원정경기 때 4대 9로 뒤지던 마이니치가 우천과 일몰 노게임(당시 헤이와다이 구장은 조명시설이 없었다.)을 노리고 고의적인 경기 지연행위를 벌여 결국 5회초에 노게임 선언이 되자 분노한 니시테츠 팬 수천명이 그라운드에 난입한 사건. 이 때 니시테츠의 오시타 히로시와 노구치 마사아키가 둘이서 함께 팬들의 주먹과 발길질에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관객들을 저지했고 결국 이날 소동은 3300명의 경찰 기동대가 투입되어 겨우 진정되었다. 이날 관객들의 소란을 저지한 공으로 오시타와 노구치는 연맹 표창을 받은 반면 지연 행위를 조장했던 유아사 요시오 총감독은 해임, [[와카바야시 타다시]] 감독은 2군 감독으로 강등당하는 조치를 받고 [[벳토 카오루]]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하였다.]을 일으켜 해임당했다. * [[카네다 마사이치]] (1973 - 1978, 1990 - 1991) 한국명 김경홍. 선수로서는 뛰지 않았으나 감독으로서 장기 집권을 했다. [[1974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이며, 거친 항의로 통산 퇴장도 8회나 당했다. * [[이나오 카즈히사]] (1984 - 1986)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니시테쓰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에이스.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프로 초창기 시절 온갖 비판의 화살을 막아내며 오치아이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도록 후원자 역할을 해서 오치아이의 기량이 만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27살의 나이에 데뷔한 늦깎이 신인이 일본프로야구의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들이 타격폼이 괴상하다고 지적할 때에도 억지로 수정하려 하기 보다는 본인이 뜻을 펼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이나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웬만해서는 야구계의 선배들에게조차 별다른 존경심을 표시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해온 오치아이조차 이나오만큼은 프로에서의 스승으로서 진심으로 존경을 했으며 이나오의 퇴임이 [[주니치 드래곤즈]]로의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다. 또한 1995년에 롯데가 10년만에 A클래스에 들어가기 전까지 1984~1985년 2년 연속 2위를 기록하며 롯데 오리온즈 시대의 마지막 A클래스로 팀을 이끈 감독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4위를 기록하며 물러났다. * [[바비 발렌타인]] (1995, 2004 - 2009) [[33-4]] 당시 감독.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우승 감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감독 1기 시절인 1995년에는 [[히로오카 타츠로]] GM과의 갈등이 너무 심해 1년만에 팀을 떠났으나 감독 2기 시절에는 [[신동빈]]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 [[니시무라 노리후미]] (2010 - 2012) 롯데 오리온즈 시절 1번타자로 활약하던 스위치히터이자 프랜차이즈 외야수였다. 코치로도 꽤 오래 활동했고, 감독이 된 이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과 퍼시픽리그 최하위를 모두 기록하는 등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거두었다. * [[이토 츠토무]] (2013 - 2017) 2010년대 중반에 롯데가 최강팀은 아녀도 A클래스 정도는 여러번 들어가게 만든 공신. 그러나 2017 시즌을 홀라당 말아먹으면서[* 특히, 4월 팀 타율이 .186에 머물렀다.]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전 감독인 니시무라나 후임 감독 이구치와는 달리 선수시절에는 롯데와 인연이 없었으나 감독으로 큰 공을 세운 케이스. 여담으로 원래 계약기간 자체는 2018년에도 이어질 예정이었는데, 이토가 2018년까지 연임했다면 [[김정후]]가 롯데에 용병으로 입단할 수 있었다.[* 이토 감독이 김정후의 입단 테스트 후에 2017 시즌 전반기를 독립 리그에서 보내면서 실전 경기를 치르는 걸 봐서 후반기에 입단시켜주겠다고 판단 보류 판정을 내렸는데, 이토의 사임이 정해지면서 그대로 무산. 후임 감독 이구치는 2017년 인터뷰에서 이토의 구단 운영을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이토가 영입하려고 한 김정후의 영입도 백지화를 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